오랜만에 티스토리를 찾았습니다. 일에 바쁘다라는 핑계를 가지고 잠시 손놓았습니다.
안타까운 소식입니다.
5월 5일 "토지"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박경리 선생님이 별세를 하셨습니다. 학생 때라면 상복을 입고, 슬픔을 감당하겠지만...... 그러지 못 하고 있습니다. 부디 좋은 곳으로 가셨으면 좋겠습니다.
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 옛날의 그 집
박경리
비자루병에 걸린 대추나무 수십 그루가
어느 날 일시에 죽어자빠진 그 집
십오 년을 살았다
빈 창고같이 휑뎅그렁한 큰 집에
밤이 오면 소쩍새와 쑥쑥새와 울었고
연못의 맹꽁이는 목이 터져라 소리 지르던
이른 봄
그 집에서 나는 혼자 살았다
다행이 뜰은 넓어서
배추 심고 고추 심고 상추 심고 파 심고
고양이들과 함께 살았다
정붙이고 살았다
달빛이 스며드는 차가운 밤에는
이 세상의 끝의 끝으로 온 것 같이
무섭기도 했지만
책상 하나 원고지, 펜 하나가
나를 지탱해주었고
사마천을 생각하며 살았다
그 세월, 옛날의 그 집
그랬지 그랬었지
대문 밖에서는
늘
짐승들이 으르렁거렸다
늑대도 있었고 여우도 있었고
까치독사 하이에나도 있었지
모진 세월 가고
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
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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